이낙훈(Lee Nak-h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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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이낙훈(李樂薰(이락훈), 1936년 4월 18일(음력 3월 27일) ~ 1998년 10월 7일)은 대한민국의 배우이자 전직 국회의원이었다. 본관은 전주(全州) 조선 태종 이방원의 7남(서자)이었던 후령군 이간의 26대 후손이다. 생애 1936년 서울에서 태어나 아현동 서소문 부근에서 자랐으며 덕수국민학교를 다녔다. 전국동화발표대회에 입상한 것을 계기로 11세 때에 HKLA (현 KBS) 방송사의 라디오 드라마에 출연하였다. 경기중학교 재학 시절 한국 전쟁이 일어났고, 9.28 수복 직후 인민군에 아버지를 잃었다. 경기고등학교 졸업을 거쳐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중퇴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마이애미 대학교 사학과에서 학사 학위 취득하였다. 연극 배우로 활동하다가 1962년 개국한 서울중앙방송(현재의 KBS)에서 탤런트 연기 활동을 시작하였고 1964년 개국한 TBC에서도 탤런트 연기 활동을 하는 등 그 영역과 폭을 넓혔다. 영어에 능숙하여 1,000여 편의 외화를 번역하였고, 외화 시리즈 《600만 불의 사나이》와 《형사 콜롬보》에서는 번역과 연출을 담당하였다. 1979년 탤런트협회 회장으로 당선되었다. 1년 후인 1980년 민정당 창당발기인으로 민정당 창당에 참여(민주정의당 당무위원)하여 당 의식개혁추진본부위원을 지냈으며, 이후 민정당 전국구로 11대 국회의원(1981년 4월 ~ 1985년 4월)을 지내면서 공연법, 영화법 개정에 참여하였다. 국회에서는 국회 문공위원, 유네스코(UNESCO)한국위원회위원을 지냈으며, 그 밖에 한멕의원 친선협회 부회장을 맡았다. 국회의원에서 물러난 뒤에도 연극배우, 영화배우, 탤런트로 활동하였다. 1987년 현대필코 사장, 1990년 범진영화사 회장을 지냈다. 1991년 혈관수술을 받으며 투병 생활을 하다 《옛날의 금잔디》로 연기를 재개하여 KBS 연기대상 등 그 해 연기상을 휩쓸었다. 1998년 10월 7일 당뇨합병증과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향년 62세. 30년 간의 연기생활 동안 1천여 편에 달하는 외화번역과 30여 편의 연극, 2백여 편의 드라마에 출연하였다. 영·호남 사투리를 능숙하게 구사하여 여유와 능청이 있는 연기를 선보였으며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연기파로 평가되기도 한다.
주요 이력
- 1936Born
- 1998Passed away
흥미로운 사실
- •Place of birth: Seoul
- •Citizenship: South Korea
- •Known as: actor, film actor, politician, television ac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