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나 터너(Lana Tur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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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라나 터너(Lana Turner, 1921년 2월 8일 ~ 1995년 6월 29일)는 미국의 배우이다. 거의 50년에 걸친 경력 동안 그녀는 핀업 모델과 영화 배우로서 명성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사생활로도 유명해졌다. 1940년대 중반, 그녀는 미국에서 가장 높은 출연료를 받는 여배우 중 한 명이었고 MGM의 가장 큰 스타 중 한 명이었으며, MGM과의 18년 계약 기간 동안 그녀의 영화는 스튜디오에 2024년 통화로 약 10억 달러의 수익을 가져다주었다. 터너는 화려한 이미지로 인해 대중문화 아이콘으로 자주 언급되며 할리우드 황금기의 1940년대이다. 1936년 캘리포니아주 헐리우드에 있는 한 몰트 샵에서 발굴되었다. 16살 때 워너 브라더스와 계약을 맺었으며, 감독 머빈 르로이가 메트로 골드윈 메이어로 이직할 때 함께 그 곳으로 옮겨갔다. 첫 영화인 《데이 원트 포겟》을 통해 대중에게 얼굴과 이름을 알렸으며, 이후 주로 청순한 소녀 역을 맡아나갔다. 터너의 머리색은 적갈색인데, 1939년부터 작품을 위해 금발로 염색한 이후 거의 평생을 금발로 살아갔다. 1940년대 초부터 《자니 이거》, 《홍키 통크》, 《미인극장》,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 등 작품의 주연을 맡으며 주연급 배우로서 성장했다. 1946년 영화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를 통해서 강렬한 팜프파탈 연기를 선보였다. 1950년대에 들어서도 인기를 이어갔으며, 영화 《페이튼 플레이스》를 통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에 지명되기도 했다. 터너는 연인 조니 스톰파나토가 자택에서 외동딸 셰릴 크레인에게 칼에 찔려 사망하는 사건을 겪으면서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다. 그녀의 다음 영화인 《슬픔은 그대 가슴에》(1959)은 그녀의 경력에서 가장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둔 작품 중 하나가 되었고, 《마담 X》(1966)에서의 주연으로 다비드 디 도나텔로 최우수 외국 여자 배우상을 수상했다. 그녀는 1970년대 대부분을 반은퇴 상태로 보내다가 1980년에 마지막 영화 출연을 했다. 1982년에는 큰 화제를 모으며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TV 시리즈 《팔콘 크레스트》에 고정 출연 제안을 수락했다. 그녀는 1992년에 인후암 진단을 받았고, 3년 후인 1994년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