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화 (조선)(Gih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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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기화(己和, 1376년 ~ 1431년)는 조선 전기의 승려이다. 속성은 유(劉)씨이며, 본관은 충주이다. 호는 함허(涵虛), 득통(得通), 무준(無準)이다. 생애 21세 때 관악산 의상암에 들어가 승려가 되고, 이듬해 회암사의 자초대사로부터 법요를 닦은 뒤 전국의 명산을 주유하고 돌아와 수도에 전념하였다. 이때부터 공덕산의 대승사, 천마산의 관음굴, 불회사 등지에서 강설하고자 모산 연봉사 등에서 3년간 수도하였다. 세종 2년(1420) 45세 때 오대산에 들어가 여러 성인들에게 공양하고 월정사에 있을 때 왕명에 의해서 대자어찰에 머물다가 4년 이후 이를 사퇴하고 길상산, 공덕산 등 여러 산을 편력하였다. 가평 운악사, 현등사에 머문 때는 세종 9년(1427)이었는데, 그는 현등사에서 3년간을 머물다가 세종 13년(1431)에 회양산에 이르러 봉암사를 중수하고 그곳에서 58세로 열반하였다. 사상 기화의 사상은 다음과 같다. 우선 그는 오도송(悟道頌)에서 "그 자리에 가 눈을 드니 10방(十方)에 푸른 하늘이요, 무(無)속에 길이 있으니 서방극락이로다(臨行擧目 十方碧落 無中有路 西方極樂)"라고 하였고, 또 "감연공적(湛然空寂)하니 본래는 1물(一物)도 없고, 신령한 빛이 빛나니 10방을 환히 통한다. 다시 몸과 마음이 있어 저 생사(生死)를 받을리 없으니, 거래왕복함에 마음에 거리낌이 없도다(湛然空寂 本無一物 靈光赫之 洞撤十方 更無身心 受彼生死 去來往復 心無墨)"라고 읊어 자기의 선풍(禪風)을 드러낸 시문을 여러 편 남겼다. 한편 조선왕조의 숭유억불책(崇儒抑佛策)을 이론적으로 비판한 《현정론(顯正論)》속에, "불교인이 목표로 하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정(情)을 버리고 성(性)을 빛나게 할 뿐이니, 정(情)이 성(性)에서 나옴은 마치 구름이 장공(長空)에서 일어나는 것과 같고 정을 버리고 성을 빛냄은 마치 구름이 걷혀 청명한 하늘이 나타남과 같다" 라고 말하여 불교는 청풍(淸風)과 같아 감정의 구름을 깨끗이 제거하고 맑은 심성의 하늘을 나타내게 한다고 하였다. 또한 억불책을 개탄하되 "불교는 비유컨대 청풍이 뜬 구름을 쓸어 버리는 것과 같다. 또렷하게 보기를 소망하면서도 청풍을 싫어함은 이상한 일이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