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 던(John Don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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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존 던(영어: John Donne, 1572년 1월 24일에서 6월 19일 사이~1631년 3월 31일)은 성공회 사제이자 시인이다. 로마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나 영국 성공회로 전향할 때까지 종교적 박해를 경험했다. 높은 교양과 뛰어난 시적 재능에도 오랫동안 빈곤 속에 살아 부유한 친구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1615년에 성공회 성직자가 되었고, 1621년에 세인트폴 대성당의 수석 사제로 임명되었다. 그런 배경이 존 던의 문학 작품(초기의 연애시와 풍자시에서 말년의 종교적 설법에 이르기까지)에 반영되어 있다. 대담한 위트와 복잡한 언어를 구사하고, 연애시, 종교시를 썼다. 형이상학파 시인의 선구자로 여겨진다. 대표작에 《벼룩》, 《일출》과 같은 노래, 《성스러운 소네트 10번》 같은 소네트, 《관》이라는 종교시가 있다. T. S. 엘리엇 등에 영향을 주었고,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의 제목은 존 던의 설교시 중 한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생애 존 던은 1572년 런던에서 여섯 형제 중 셋째로 태어났다. 가톨릭 교도였던 부친은 런던에서 철물점 관리인을 했으며 웨일즈계로 이름은 아들과 똑같은 존 던이다. 부친이 1576년에 죽자 모친 엘리자베스 헤이우드가 아이들을 가르쳐야 했다. 엘리자베스는 극작가 존 헤이우드(John Heywood)의 딸로, 형제로는 번역가이자 예수회 장로인 재스퍼 헤이우드(Jasper Heywood)가 있다. 유명한 로마 가톨릭 순교자 토마스 모어의 여동생의 손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까운 사람들이 순교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었고, 많은 사람이 종교적 이유로 추방되었다. 그런데도 던은 예수회 교육을 받는다. 엘리자베스는 남편이 죽은 지 2~3개월 후에 유복한 홀아비로 아이 13명을 둔 존 시밍스와 재혼했다. 다음 해인 1577년, 어머니와 이름이 같았던 던의 여동생 엘리자베스가 죽었고, 다른 두 자매 메리와 캐서린도 1581년에 죽었다. 던이 10세가 되기 전에 가족 네 명의 죽음을 경험한 것이다. 1584년 존 던은 11세의 나이로 옥스퍼드 대학교의 하트 홀(현 하트포드 대학)에 입학해 공부했다. 그곳에서 3년간 공부한 후 던은 1587년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트리니티 칼리지로 전학했다. 그러나 졸업에 필요한 "충성의 맹세 (Oath of Supremacy)"을 거부했기 때문에 학위를 얻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