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휴버트 험프리(Hubert Humphr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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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휴버트 호레이쇼 험프리 2세(영어: Hubert Horatio Humphrey, Jr., 1911년 5월 27일 ~ 1978년 1월 13일)는 미국의 민주당 정치인으로 린든 B. 존슨 대통령 아래 제38대 부통령 (1965년 ~ 1969년)으로 재직하였다. 험프리는 미네소타주의 연방 상원의원으로서 총 5개의 기간을 지냈고, 민주당의 원내 총무를 지냈다. 그는 미네소타 민주-농업-노동당과 미국 민주 활동당의 창당자였다. 그는 또한 미니애폴리스의 시장 (1945년 ~ 1949년)을 지내기도 하였다. 1968년 험프리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였으나 공화당 후보 리처드 닉슨에 의하여 좁게 패하였다. 험프리는 전체를 위하여 민권을 달성하는 데 강하게 전념되었다. 그는 1948년 민주당 전당 회의에서 "주들의 권리의 그림자들에서 빠져나오고 인권의 밝은 햇빛으로 솔직히 걸어나는 데 민주당을 위하여 시간이 미국에 도착하였습니다."라고 말하며 당의 정강 선언에서 친민권 강령 항목을 위한 성원을 이겼다. 이 논란의 여지가 있는 입장은 해리 S. 트루먼을 위하여 북부 흑인 투표인들에 의한 성원을 강화하였고 남부 보수적 민주당원들의 영향력을 약하게 하였다. 흑인 민권 법안을 비롯한 여러 진보적인 법안 통과에 기여하여 '흑인 민권 운동의 투사'라는 갈채를 받았다. 초기 세월 사우스다코타주 월리스에서 태어난 험프리는 휴버트 험프리 1세와 노르웨이 이민자 라그닐 크리스티네 산네스의 아들이었다. 험프리는 다코타 평원에 놓인 작은 타운 도널드에서 자신의 청년기의 대부분을 보냈다. 그의 부친은 타운의 약사이자 도널드의 군수와 군의원을 지낸 공동체 지도자였다. 1920년대 후반에 대공황이 도널드에 타격을 입혔다. 타운에 있는 은행들이 둘다 폐문하였다. 험프리의 부친은 자신의 약국을 열어두는 데 분투하였다. 자신의 아들이 도널드의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휴버트 1세는 도널드를 떠나 그가 자신의 재산을 향상시키는 희망을 둔 더욱 큰 타운 휴런에서 새로운 약국을 개업하였다. 가족의 재정적 분투의 결과로서 험프리는 새로운 약국에서 자신의 부친을 돕는 데 겨우 1년 후에 미네소타 대학교를 떠나야 했다. 그는 콜로라도주 덴버에 있는 드루 약대에서 빠르게 약사 면허증을 받아 1930년부터 1937년까지 가족의 약국을 운영하는 부친을 도우면서 보냈다. 당시 휴런에서 험프리 제약은 수익성이 되었고 가족은 다시 번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