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Herbert von Karaj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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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독일어: Herbert von Karajan, 어릴 적 본명 헤리베르트 리터 폰 카라얀 (Heribert Ritter von Karajan), 1908년 4월 5일 ~ 1989년 7월 16일)은 오스트리아의 지휘자이다. 그는 35년간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로 재직했다. 그는 1950년대 중반부터 죽을 때까지 서양 고전 음악의 지휘자였다. 그의 음반 판매량은 생전에만 1억 1,150만장 정도로 추정되며, 사후에 판매된 양을 포함하면 2억장이라고 하고 발매되지 않은 음반들도 존재하기에 서양 고전 음악 지휘자 중 가장 많다. 생애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1929년 울름 극장의 지휘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 해 막스 라인하르트가 주최한 음악회를 지휘했다. 그 뒤 나치 시절 나치에 가입하여 프랑스 정복, 오스트리아 합병 등 여러 행진곡을 지휘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월터 레그에 의해 복직하여, 1955년부터 1989년까지 베를린 필하모닉의 종신 지휘자를 지냈으나 1980년대 베를린 필하모닉과 사이가 나빠지자 빈 필하모닉과 협연을 했다. 1967년부터 1989년까지 잘츠부르크 음악제 음악 감독을 지내다 1989년 심장마비로 쓰러져 잘츠부르크에 묻혔다. 어린 시절 가문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그리스계의 잘츠부르크 중상류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고조부인 게오르크 요하네스 카라야니스(Γεώργιος Ιωάννης Καραγιάννης)는 코자니(Κοζάνη)에서 태어나서 1767년 빈으로 이주하여, 최종적으로 작센주의 켐니츠(Chemnitz)에 정착하였다. 그와 그의 형제는 작센의 의류 사업 설립에 뛰어들었고, 둘은 공로로 1792년 6월 1일 작센 선제후국의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3세 선제후(훗날 작센 왕국의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1세 국왕이 됨)에 의해 귀족이 되었다. 카라야니스라는 성은 카라얀이 되었고, 성에 귀족을 뜻하는 ‘폰(von)’이 붙게 되었다. 초기 경력 1929년 1월 22일, 카라얀은 잘츠부르크에서 지휘자로 데뷔했다. 이 공연은 울름 시립극장(Stadttheater Ulm) 총감독의 눈에 띄었고, 이를 계기로 카라얀은 해당 극장의 부지휘자(assistant Kapellmeister)로 첫 임용을 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