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리 S. 트루먼(Harry S. Tru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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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해리 S. 트루먼(영어: Harry S. Truman, 문화어: 해리 트루맨, 1884년 5월 8일~1972년 12월 26일)은 미국의 제34대 부통령(1945년), 제33대 대통령(1945년~1953년)이었다. 이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부통령이 된 지 불과 82일 만에 대통령직을 승계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독일의 항복을 받았고,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의 천황인 히로히토로부터 항복을 받았으며, 한국 전쟁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핵무기를 전쟁에서 사용하라고 명령한 국가 원수이다. 생애 어린시절 그는 어렸을 적 역사에 관한 책을 너무 많이 읽는 바람에 시력이 나빠져서 사관학교에 가진 못하였지만, 시력 검사표를 외워 미주리주 소위 방위군에 임관하고 1차대전에 참전하여 포병장교로 프랑스에서 근무하다가 대위로 제대했다. 첫 정치생활 그는 1919년, 베스 트루먼과 결혼하고, 남성복 가게를 열었으나 3년도 못 가 망했다. 하지만 아내와의 결혼생활은 행복하였다. 그 뒤, 정치계에 투신하여 1922년부터 1934년까지 판사로 봉사하였고, 연방 상원의원의 길을 열었다. 1944년까지 연방 상원의원으로 국방위원장까지 맡았지만 그다지 주목 받거나 활발한 상원의원은 못되고 그저 무난한 편이었다. 부통령에서 대통령으로 1945년 4월 12일 트루먼이 부통령이 된 지 83일날,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뇌출혈로 사망하자 대통령직을 승계하여 대통령이 되었다. 리틀 보이(Little Boy)라는 별명으로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때 개발되어 완성된 원자 폭탄이 있었는데, 이것을 과연 일본에 투하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하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결국 일본을 무조건 항복시키기 위해서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8월 9일 나가사키에 각각 투하하여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받는데는 성공하는 쾌거를 달성하였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20만명이 죽거나, 방사능 질병으로 고통을 받게 되었으므로, 트루먼의 원자탄 투하는 일본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비판을 받아야 했다. 국내에서는 페어 딜(Fair Deal)이라는 정책을 펼쳤는데 이것은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추진했던 뉴딜정책을 연장 확대한 것으로 세계 대전이 끝난 뒤의 미국 경제를 안정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