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고리 라스푸틴(Grigori Rasput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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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그리고리 예피모비치 라스푸틴(러시아어: Григо́рий Ефи́мович Распу́тин, 영어: Grigori Yefimovich Rasputin, 문화어: 그리고리 예피모비치 라스뿌찐, 1869년 1월 22일(구력 1월 10일)~1916년 12월 30일(구력 12월 16일))은 제정 러시아 말기의 파계 수도자이자 예언자이다. 혈우병에 걸린 황태자를 치료해준 것으로 황제의 신임을 얻었고 이후 황제의 배후에서 정치가 겸 외교관으로 내정 간섭을 일삼다 암살되었다. 입궁 시베리아 토볼스크 현에서 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18살 때부터 떠돌이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본명은 그리고리 예피모비치 노비흐(Grigory Yefimovich Novykh)였으나 학창 시절 워낙 학습 태도가 불량하고 방탕하게 생활한 탓에 주변 사람들이 '방탕한 사람'이라는 뜻의 '라스푸틴'이라고 부르는 것이 그의 이름으로 고착되어 그리고리 라스푸틴으로 불리게 되었다. 1903년 당시 제정 러시아 수도인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나타났고, 혈우병으로 고생한 황태자를 기도 요법으로 병세를 완화시켜 신망을 얻었으며, 귀족 대접을 받게 되었다. 폭정 극심한 신경쇠약에 시달리는 알렉산드라 황후는 라스푸틴 없이는 하루도 견디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자 라스푸틴은 이를 이용하여 니콜라이 2세를 사실상 허수아비로 만들며 폭정을 일삼았다. 니콜라이 2세의 여동생인 올가 알렉산드로바 여대공은 차라리 라스푸틴을 죽여 없애야 러시아가 평화로워진다고 하면서 라스푸틴을 몰아내려 하였다. 하지만 라스푸틴은 알렉산드라 황후의 지지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올가가 쉽게 건드릴 수 없었다. 라스푸틴은 러시아의 농민들에게 생계유지조차 어려울 만큼 가혹한 세금을 거둬들여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웠으며 이에 항의하는 농민들에게 총탄을 퍼붓기까지 했다. 이를 후세의 사람들은 피의 일요일이라 부르고 있다. 특히 1915년 니콜라이 2세가 제1차 세계대전에 직접 참전하게 되자 러시아는 완전히 라스푸틴의 천하가 되었는데 이때 라스푸틴의 폭정은 전무후무한 수준이었다. 이 때문에 러시아의 모든 일반 농민들은 물론이며 심지어는 황제파의 귀족들마저 황제에게 등을 돌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