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다 메이어(Golda Me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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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골다 메이어(영어: Golda Meir, 영어 발음: /ˌɡoʊldə meɪˈɪər/), 또는 골다 메이르(히브리어: גולדה מאיר, 히브리어 발음: [ˈɡolda meˈ(ʔ)iʁ, ɡolˈda -] ( ), 1898년 5월 3일~1978년 12월 8일)는 이스라엘의 정치인이다. 이스라엘 노동부 장관, 외무부 장관을 거쳐 1969년부터 1974년까지 이스라엘 제5대 총리를 역임했으며 2025년 기준으로 이스라엘의 첫 번째이자 유일한 여성 총리이다. 1898년 러시아 제국 키예프의 유대인 가정에서 골다 마보비치(러시아어: Го́лда Мабович, 히브리어: גּוֹלְדָּה מאַבאָוויטש)라는 이름으로 태어나 1906년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위스콘신주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사로 활동하다가 노동 시온주의 활동을 시작했고 1921년 남편과 함께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 메르하비아로 거처를 옮겼다. 이후 히스타드루트의 키부츠 대표가 되었고 1934년 무역 연합의 집행 위원이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유대인 단체에서 활동했고 1948년 이스라엘 독립 선언서의 서명자들 중 한 명을 담당했다. 1949년 크네세트의 의원이 된 후 1956년까지 이스라엘 노동부 장관으로 활동했으며 1956년 이스라엘 수상 다비드 벤구리온에 의해 이스라엘 외무부 장관으로 임명되어 1966년 병으로 사임할 때까지 이스라엘 외무부에서 활동했다. 1969년 레비 에슈콜의 사망 이후 이스라엘 노동당 당수가 되어 이스라엘 총리에 임명되었고 총리 초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에 관해 서방 세계 지도자들과 외교 정책을 논의했다. 1973년 욤키푸르 전쟁 발발 이후 이스라엘 방위군의 패전과 인명 손실 소식으로 정치적 압박을 받았고 아그라나트 위원회로부터 초기 패전에 대한 책임 조사를 받았다. 골다는 그녀가 속한 하마라크 연합정권이 1973년 이스라엘 총선에서 패배한 후 총리직에서 사임했고 이츠하크 라빈이 새로운 총리가 되었다. 1978년 림프종으로 사망했고 시신은 헤르츨 언덕에 매장되었다. 골다 메이어는 이스라엘 건국 전후 당시 정치적 활동으로 '마거릿 대처 이전에 있었던 철의 여인', '이스라엘 내각에서 유일한 남성/사람'이라는 긍정적 평가를 받지만, 욤키푸르 전쟁 초기의 패전, 팔레스타인에 대한 억압적 정책으로 부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