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코모 카사노바(Giacomo Casano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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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자코모 지롤라미 카사노바(이탈리아어: Giacomo Girolami Casanova, 1725년 4월 2일~1798년 6월 4일)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모험가이자 작가, 시인, 소설가이다. 생애 1725년 4월 2일 연극배우인 가에타노 카사놔와 자네타 파루시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모가 유럽 전역을 순회하며 공연했기에, 어린 카사노바는 주로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15세에 삭발식을 하고 성직에 입문하지만, 로마에서 교황 조카의 정부를 건드렸다가 암살당할 뻔한 후, 로마를 탈출해 유럽 전역을 떠돌았다. 평생에 걸친 밀라노, 베를린, 빈, 제네바, 프라하, 파리, 런던 등 100곳 이상의 도시를 떠도는 삶의 시작이었다. 자기 능력을 발휘해 스스로 먹고살아야 했기에 그는 성직자, 군인, 바이올린 연주자, 사서, 대사 비서, 스파이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다. 기회만 닿으면 도박장에서 노름을 했고, 필요하면 사기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왕실 직영 복권 사업을 운영하기도 하고, 필요하면 어음 사기를 치거나, 손에 쥐지도 않은 보석을 판매하는 등 인한 사기 행각도 벌였다. "필요할 때 경솔한 자, 멍청한 자를 속이"면서 살아간 걸 오히려 자부했다. 이 때문에 그가 평생 가장 많이 드나든 곳은 감옥이었고, 때때로 지인 도움으로 탈옥하여 다른 도시로 도망쳤다. 탕진과 도주는 그의 삶의 주요 원리였다. 그는 소유에 집착하지 않았고, 순간순간 생기는 대로 모든 걸 탕진하면서 살았다. 완전히 비자본주의적 삶이었다. 유럽을 떠도는 동안 그는 190센티미터가 넘는 훤칠한 키에 준수한 용모, 스스로 디자인한 멋진 의상, 화려한 언술과 완벽한 매너를 갖추고, 무엇보다 여성에게 기쁨을 주겠다는 사명감을 품고 최선을 다해 여성에게 봉사했다, 그는 어떤 여인에게서도 사랑할 만한 점을 찾아냈고, "탈선이라는 생의 강렬한 기쁨"을 함께 나누었다. 그에게 사랑은 생을 살아가는 이유였고, 성행위 도중 시를 주고받는 등 모든 섹스를 철저한 퍼포먼스 행위로 연출하기 위해서 애썼다.내 관능의 쾌락을 가꾸는 것은 내 삶의 중요한 일이었다. 나에게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나는 여성을 위해 태어났다는 의식을 품고, 늘 여성을 사랑했으며, 또 내가 할 수 있는 한 여성으로부터 사랑받으려 했다. 카사노바가 사랑을 나눈 여인들의 숫자는 122명에 이르고, 여기에 약간의 동성애 남자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