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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 아라고

프랑수아 아라고(François Ar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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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도미니크 프랑수아 장 아라고(프랑스어: Dominique François Jean Arago, 1786년 2월 26일 ~ 1853년 10월 2일), 약칭 프랑수아 아라고(François Arago[fʁɑ̃swa aʁaɡa])는 프랑스의 수학자, 물리학자, 천문학자, 프리메이슨이며, 이탈리아 카르보나리당의 지지자이며 정치가이다. 어린 시절 및 직업 아라고는 프랑스 피레네-오리엔트 지방 페르피냥 근처에 있는 인구 3,000의 작은 마을 에스타겔(Estagel)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부모는 에스타겔의 조폐국 재무관 프랑수아 보나방튀르 아라고(1754–1814)와 마리 아라고(1755–1845)였다. 아라고는 사형제 중 맏이였다. 둘째인 장 아라고(1788~1836)는 북아메리카로 이민하여 멕시코 군대의 장군이 되었다. 셋째 자크 에티엔 빅토르 아라고(1799–1855)는 1817년부터 1821년까지 우라니에 호를 타고 루이 드 프레시네가 이끄는 탐험 항해에 참여했으며, 프랑스로 돌아오면서 언론활동과 드라마에 전념했다. 넷째 에티엔 뱅상 아라고(1802–1892)는 <비라그의 상속녀>에서 소설가 발자크와 협동하는 등 1822년부터 1847년까지 주로 협동 작업을 통해 많은 드라마 소품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확고한 군사적 취향이 있던 아라고는 페르피냥 시립대학에 진학했고, 그곳에서 에콜 폴리테크니크의 입학시험에 대비하여 수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2년 반 만에 그는 시험에 필요한 모든 과목과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웠고, 툴루즈로 시험을 보러 가서 라그랑주에 대한 지식을 보여 시험관을 놀라게 했다. 1803년 말, 아라고는 에콜 폴리테크니크에 입학했지만, 그곳의 교수들은 지식을 전달하거나 교육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포병이 되고자 하였지만 1804년 푸아송의 조언과 권고를 받아들여 파리 천문대 서기가 되었다. 그는 거기서 라플라스와 알게 되었고, 그의 영향력을 통해 비오와 함께 자오선의 길이를 측정하는 임무를 받았다. 이 일은 달랑베르가 시작하여 1804년 메섕이 사망하자 중단되었다. 아라고와 비오는 1806년 파리를 떠나 스페인의 여러 산들을 따라 작업하였다. 그들이 탐사를 수행할 지점의 최남단인 포멘테라 섬의 위도를 결정한 후 비오는 파리로 돌아갔다. 아라고는 1미터의 정확한 길이를 결정하기 위해 1809년까지 작업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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