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디 코크런(Eddie Coch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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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레이 에드워드 코크런(영어: Ray Edward Cochran, 1938년 10월 3일 ~ 1960년 4월 17일)은 미국의 로큰롤 음악가이다. 코크런의 대표곡이라고 할 수 있는 〈Twenty Flight Rock〉, 〈Summertime Blues〉, 〈C'mon Everybody〉, 〈Somethin' Else〉는 1950년대 중엽-60년대 초엽의 청소년의 불만과 욕구를 포착해낸 작품들이다. 초기의 싱글에서부터 벌써 멀티트랙 녹음, 디스토션 수법, 오버더빙 따위를 활용했다. 또한 기타, 피아노, 베이스, 드럼 연주가 가능한 멀티플레이어였다. 샤프한 차림과 매력적인 젊은이라는 성격은 1950년대 로커의 본보기로서 그를 상징적 입지에 올려놓았다. 어린 나이에 음악을 접했으며 학교 밴드에서 연주하였고 블루스 기타를 독학하였다. 1954년 행크 코크런(혈연관계 아님)과 듀엣을 결성하였으나 작곡가 커리어를 시작하기 위해 이듬해 해산한다. 첫 히트곡은 제인 맨스필드가 주연한 《더 걸 캔트 헬프 잇》에서 공연한 〈Twenty Flight Rock〉이었다. 이후 리버티 레코드와 녹음계약을 맺고 〈Sittin' in the Balcony〉를 녹음, 빌보드 차트 18위를 달성한다. 1960년 4월의 영국 투어 와중 윌트셔주 치프넘에서의 교통사고로 인하여 21세의 나이에 요절하였다. 마지막 공연장소는 브리스톨 히포드롬였다. 1987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음악인들에 의해 그의 곡은 녹음되었다. 어린 시절 에디 코크런은 미네소타주 앨버트 리의 네이브 병원(Naeve Hospital)에서 출생하였다. 부친 프랭크 코크런은 오클라호마시에서 공장기계운전사로 일하였으나 경제공황, 가뭄, 모래폭풍 등의 악영향을 피하고자 미네소타주에서 650 마일 정도 떨어진 소도시 앨버트 리로 이주하였다. 1938년 코크런 일가는 그곳으로 이주하였으며 코크런의 맏형 빌을 제외한 전가족이 한지붕 아래 살았다. 코크런 집안은 그다지 리듬에 대한 재주가 없었던지라 코크런의 옹알이나 손벽 마주치기는 그 자체로 가족에게 있어 큰 참신함이었다. 성장한 코크런은 램지 초등학교(Ramsey Elementary)에 입학하였다. 프랭크 코크런은 그즈음 육류공장을 그만두고 낙농사업에 필요한 기계를 제작하는 회사인 올센스(Olsens)라는 곳에 취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