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비트 힐베르트(David Hilb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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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다비트 힐베르트(독일어: David Hilbert, IPA: [ˈdaːvɪt ˈhɪlbɐt], 1862년 1월 23일 ~ 1943년 2월 14일)는 독일의 수학자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활약한 가장 위대한 수학자 중 하나로 손꼽힌다. 도형을 연구하는 수학의 한 분야인 기하학을 공리화하였으며, 힐베르트 공간을 정의하여 함수해석학의 기초를 닦았다. 또한 일반 상대성 이론을 수학적으로 정의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생전 수학계의 지도자로 활동했고 사후에도 힐베르트 문제를 통해 수학계의 흐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생애 유년 1862년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오토 힐베르트(Otto Hilbert)와 마리아 테레제 힐베르트(Maria Therese Hilbert, 혼전 성씨: 에르트만·Erdtmann)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모두 판사였다. 김나지움(독일의 고등학교)까지는 수학 이외의 과목에 흥미가 없어 그리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였지만, 좀 더 개방적인 학교로 옮긴 후 공부에 흥미를 갖기 시작하여 수학에서 최우수 성적을 얻었다 1880년 힐베르트는 쾨니히스베르크 대학교에 입학하였다. 힐베르트는 하인리히 베버에게서 수론과 함수론 강의를 듣고, 와중에 당시 유행하던 불변식론을 접하였다. 힐베르트의 2년 연하인 헤르만 민코프스키도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에서의 청강을 마치고 쾨니히스베르크로 돌아왔고, 베버의 후임으로 원주율의 초월성을 증명한 페르디난트 폰 린데만이 오고, 그와 같이 아돌프 후르비츠가 사강사로 부임하였다. 이렇게 만나게 된 힐베르트, 민코프스키, 후르비츠 세 사람은 평생 친구로 남았다. 힐베르트는 대수적 형식의 불변성에 대한 문제를 독창적으로 풀어내고, 1884년 12월 구두시험을 통과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성년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힐베르트는 1885년 여름 후르비츠의 권유로 펠릭스 클라인이 있던 라이프치히 대학으로 갔다. 1886년 펠릭스 클라인의 권유로 파리 유학을 떠나, 당시 최고의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 등과 교우하고, 귀국길에 레오폴트 크로네커도 만났다. 귀국 후 쾨니히스베르크에서 불변식에 관한 논문과 《가장 일반적인 주기함수》라는 제목의 강의시험을 통과하여 하빌리타치온을 취득하였다. 1888년 초에 힐베르트는 파울 고르단(독일어: Paul Gordan)을 만나 소위 "고르단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