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비드 벤구리온(David Ben-Gur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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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다비드 벤구리온(히브리어: דָּוִד בֶּן־גּוּרִיּוֹן, 히브리어 발음: [daˈvid ben ɡuʁˈjon] ( ), 폴란드어: Dawid Ben-Gurion 다비트 벤구리온[*], 1886년 10월 16일~1973년 12월 1일)은 이스라엘의 정치인이다. 1935년부터 유대인 단체의 수뇌부로 활동하며 이후 유대인 단체 집행위원회 회장이 되었고,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에 있는 유대인 공동체 활동과 이스라엘 독립 운동을 지휘했다. 이스라엘 건국에 기여한 주요 인물들 중 한 명이며 초대, 제3대 이스라엘 총리를 지냈다. 1886년 러시아 제국 폴란드 입헌왕국의 플론스크에 거주하던 폴란드계 유대인 가정에서 다비트 요세프 그룬(폴란드어: Dawid Joseph Grün, 히브리어: דוד יוסף גרין)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고 1906년 오스만 제국으로 이민을 가 예루살렘 무타사리프령에 정착했다. 1909년 "벤구리온"으로 개명했고 1935년부터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 내 유대인 공동체의 지도자로 활동하며 1954년부터 55년까지 1년 동안 쉬었던 것을 제외하고 1963년까지 이스라엘 내부 유대인 공동체를 지휘했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시온주의에 관심이 많았고 이후 시온주의 운동을 지휘하며 1946년 세계 시온주의자 기구의 집행위원장이 되었다.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건국을 공식 선언했고 제작을 보조했던 이스라엘 독립 선언서에 가장 먼저 서명했다. 1948년 아랍-이스라엘 전쟁 당시 이스라엘 민병대들을 모아 이스라엘 방위군을 조직했고 아랍-이스라엘 전쟁에서 이스라엘의 승전에 기여하며 "이스라엘 건국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얻었다. 전쟁 이후 이스라엘의 초대 총리와 국방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이스라엘 국가 기반을 다지는 사업과 유대인 이민자들의 이스라엘 유입 및 정착, 서독 정부와 홀로코스트 당시 나치 독일의 유대인 재산 압류에 대한 보상 문제 해결 사업을 진행했다. 1953년 이스라엘 총리, 1954년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에서 사임하며 일반적인 크네세트 의원이 되었고 라본 사건으로 핀하스 라본이 국방부 장관에서 사임하자 1955년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에 재부임했다. 1955년 이스라엘 총선 이후 이스라엘 총리에 재취임했고 아랍 국가들의 게릴라전에 대한 보복작전과 1956년 수에즈 위기 당시 이스라엘군을 지휘했다. 1963년 총리와 국방부 장관직에서 사임했고 1970년 정치인 경력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