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로이소스(Croe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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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크로이소스(고대 그리스어: Κροῖσος, 기원전 595년 ~ 기원전 547년?)는 기원전 560년부터 리디아의 마지막 왕이었다. 그는 기원전 547년 페르시아 제국에 전쟁을 일으켰다가 패하여 떠돌이가 되었다. 크로이소스의 패배는 그리스에 심대한 문화적인 충격을 주었는데, 적어도 기원전 5세기 말경까지는 크로이소스는 신화적인 인물이다. 그는 연대기의 전통적인 제약의 바깥 즉 여러 나라의 연대기에 동시에 나와 있었다. 크로이소스는 그 엄청난 부로도 잘 알려져 있었으며, 헤로도토스나 파우사니아스는 델포이에 있던 크로이소스의 시주품에 대해서 기록하였다. 그리스어와 페르시아어에서 ‘크로이소스’의 이름은 ‘부자’와 동의어가 되었다. 거기다 현대 유럽계 언어에서 ‘크로이소스’는 큰 부자의 대명사이고, 영어에서는 ‘크로이소스만큼이나 부유한’(rich as Croesus) 또는 ‘크로이소스보다 더 부자인’(richer than Croesus)라는 관용구가 있다. 또한 최초의 공인 통화 체계와 화폐 제도를 발명한 것이 크로이소스라고 말하기도 한다. 생애 신화적 기록 J. A. S. 에반스는 “5세기에 크로이소스는 연대기 범위 밖에 있는 신화적 인물이었다”고 말했다. 크로이소스에 대한 고전문학은 바킬리데스와 장작 산의 크로이소스의 시를 제외하고 3가지가 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있는 크로이소스의 이야기는 리디아 인의 전승에 근거한 것이라고 한다. 〈솔론과의 대화〉 (1.29-33), 〈아들 아테에스(Atys)의 비극〉 (1.34-45),〈 크로이소스의 몰락〉 (1.85-89) 등이 적혀있다. 크세노폰의 〈키루스 교육〉 7.1에서는 크로이소스의 사례가 있다. 크테시아스 〈잃어버린 책〉(호티오스에 의한 약간의 요약이 남아 있다) 중 키루스 2세에 대한 찬사 중에도 크로이소스에 대한 언급이 있다. 어린 시절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크로이소스는 기원전 595년경에 리디아 왕 알리아테스 2세의 아들로 태어났다. 기원전 560년 아버지 알리아테스 2세의 사후, 리디아 왕이 된 크로이소스는 에페소스를 시작으로 이오니아와 아이올리스의 그리스 도시 국가를 차례로 정복해 할뤼스 강(지금의 터키 키질이므마크 강) 서쪽 대부분을 리디아에 합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