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앤절라 데이비스(Angela Dav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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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앤절라 이본 데이비스(Angela Yvonne Davis, 1944년 1월 26일 ~ )는 흑인 민권 운동에 높이 연루되어 온 미국의 정치 활동가, 학자이자 저술가이다. 그녀는 인종 정의, 여성의 권리와 형사 사법 개혁에 자신의 업무와 영향력으로 잘 알려졌다. 데이비스는 의식사 학과에서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타크루즈에서 퇴직 교수이자 대학의 여성학과의 전 부서이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데이비스는 흑표당과 자신의 관계로 알려졌으나 사실 그 조직과 미국 공산당의 당원으로서 짧은 시간 만을 보냈다. 당분간 그녀는 심지어 FBI의 "10대 지명수배자"에 나타났다. 1997년 데이비스는 교도소 해체를 위한 노력하는 조직 혹은 자신과 다른이들이 감옥-산업 단지로 부른 조직인 "임계저항"을 공동 창립하였다. 어린 시절 앨라배마주 버밍햄에서 4명의 자녀 중 첫째로 태어났다. 부친 B. 프랭크 데이비스는 이후에 주유소를 연 교사였고 모친 샐리 벨 데이비스는 전미 흑인 지위 향상 협회에서 활동적이었던 교사였다. 그녀의 형제자매는 2명의 남동생 벤과 레지널드, 그리고 누이 동생 파니아를 포함한다. 벤은 미식축구 선수로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에 클리블랜드 브라운스와 디트로이트 라이온스를 위하여 디펜시브 백으로 활약하였다. 데이비스는 시초적으로 버밍햄에서 인종적으로 분리된 이웃에 살았으나 1948년 주로 백인들에 의하여 거주된 도시의 외곽 지역에 있는 "센터 스트리트에 있는 큰 목조 주택"으로 이주해 들어갔다. 지역에서 백인 이웃들은 적대적이었으나 데이비스가 자신의 자서전에 쓴 대로 가족이 센터 스트리트의 "자신들 쪽"에 머물면서 그들을 놔두었다. 그러나 또 다른 흑인 가족이 센터 스트리트의 다른 쪽에 이웃으로 이주해 들어갔을 때 그 가족의 주택은 "내가 들어본 것 중 가장 무서운 천둥소리로 가장 큰 소리보다 100배 더 큰 폭발"에 의하여 폭파 되었다고 그녀는 썼다. 아직도 흑인 가족들은 지속적으로 중산층 이웃으로 이주해 들어가 화난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폭격은 곧 우리의 이웃이 "다이너마이트 힐"로 알려질 그런 끊임없는 반응이 되었다"고 데이비스는 말했다. 데이비스는 전체 흑인 학생 인구들과 함께 한 인종적으로 분리된 학교로 버스를 타고 다녔으며 처음에 초등학교 캐리 A. 터글 학교로 이후에 파커 고등학교의 확대였던 몇 블록 떨어진 다른 학교인 파커 애닉스 학교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