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앤 불린(Ana Bolena)
앤 볼레인, 앤 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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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앤 불린(Anne Boleyn, 1501년/1507년 ~ 1536년 5월 19일)은 헨리 8세의 두 번째 왕비이다. 헨리 8세는 교황청이 전처인 아라곤의 카탈리나와 이혼을 불허하자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잉글랜드 교회를 분리하는 수장령을 선포하고 앤 불린과 결혼을 강행하였다. 이 결혼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으며 헨리 8세는 또 다시 이혼을 결심하고 앤 불린을 불륜과 이단, 모반 등의 혐의로 처형하였다. 앤 불린을 둘러싼 이러한 상황은 잉글랜드의 종교 개혁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엘리자베스 1세의 생모이다. 앤 불린은 토머스 불린과 엘리자베스 하워드 부부의 딸로 어린 시절 네덜란드와 프랑스에서 자랐다. 1522년 사촌인 제임스 버틀러와 결혼하기 위해 귀국하였으나 이 혼사는 성사되지 않았고, 대신 헨리 8세의 왕비인 카탈리나의 시녀가 되었다. 이듬해인 1523년 헨리 퍼시와 혼담이 오갔으나 이 혼담도 이루어 지지 않았다. 1526년 2월에서 3월 무렵 헨리 8세는 앤 불린에게 자신의 정부가 되달라고 요구 하기 시작하였다. 이미 언니인 메리 불린이 헨리 8세의 정부였고 옆에서 그 사이를 지켜보았던 앤 불린은 이 요구를 완강히 거부하고 오직 정식 결혼만 받아들일 수 있다고 요구하였다. 헨리 8세는 딸 메리가 있었지만 왕위를 물려줄 아들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기 때문에 카탈리나와 이혼하고 앤 불린과 결혼하기로 결심하였다. 당시 유럽 기독교 세계에서 결혼은 신성한 것으로 여져졌고 이혼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았지만, 왕족이나 귀족은 대개의 경우 정략 결혼으로 맺어진 사이였기 때문에 결혼을 무효화 하는 방식으로 이혼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헨리 8세 역시 카탈리나가 요절한 형 아서 튜더와 이미 결혼하였기 때문에 자신과의 결혼은 무효라는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교황청은 헨리 8세의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헨리 8세는 잉글랜드 교회의 분립을 선언하게 된다. 수 많은 갈등 속에서 이루어진 결혼은 오래 가지 못하였다. 앤 불린은 엘리자베스를 낳았지만 이후 유산을 반복하였고, 앤 불린이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생각한 헨리 8세는 아들을 낳아 줄 또 다른 여성에게 눈을 돌렸다. 1536년 4월 앤 불린은 불륜과 이단, 모반 등의 혐의로 체포되어 런던탑에 수감되었다가 5월 19일 참수형으로 처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