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앨프레드 대왕(Alfred the Great)
이 스타의 새 소식이 올라오면 알림으로 받아보세요
날짜별 보기
누구인가요?
앨프레드 대왕(고대 영어: Ælfred Micela 앨프레드 미켈라) 또는 앨프래드 대왕(고대 영어: Ælfræd Micela 앨프래드 미켈라), 알프레드 대왕(영어: Alfred the Great)은 9세기 후반 웨식스의 왕으로 브리튼섬의 앵글로색슨족을 하나로 뭉쳐 사실상 잉글랜드 통일을 이룬 주역이다. 생애 앨프레드는 웨식스 국왕 에그버트의 손자로, 영·프 해협의 북부에서는 9세기초의 수십 년 간에 앵글로색슨 7왕국 중에서 웨식스 왕국이 에그버트 치하에 전국을 통일했다. 그러나 이 통일 국가는 9세기 반경에 런던, 캔터베리, 요크를 공격하여 전 영토를 황폐하게 만든 데인족 바이킹에 의해서 멸망하였다. 871년 애설레드 1세의 뒤를 이어 웨식스의 왕이 된 앨프레드는 은화를 지불하고 바이킹들이 웨식스에서 떠나도록 하였다. 이후 몇 년 동안 데인족들은 머시아를 정복하였고 일부는 노섬브리아에 정착하였지만 결국 876년 다시 웨식스에 나타났다. 앨프레드는 그 동안 데인족의 침공에 대비해 왔기에 1년여에 걸쳐 방어하였고 877년 휴전하였다. 데인족은 머시아에 정착지를 만들고 겨울이 지나기를 기다렸다가 878년 다시 웨식스를 공격하였다. 급작스런 기습으로 앨프레드는 미처 방어선을 구축할 수 없었고 수도인 윈체스터를 버리고 서머싯 레벨즈로 도망가 몸을 숨겼다. 몇 달 동안 군사를 모은 앨프레드는 에딩턴 전투에서 대승을 거둬 데인족을 격퇴할 수 있었다. 이로서 데인족은 이스트앵글리아로 물러갔으며 웨식스와 최종적인 종전 조약을 맺었다. 이 시기 콘월에는 왕이 없었지만, 앨프레드의 자문이자 셔번의 주교였던 아세르는 콘월을 웨식스와 분리된 별개의 왕국으로 기록하고 있다. 879년 다시 한 번 침공을 벌이기 위해 바이킹들이 해협을 건너 템즈강 어귀에 집결하면서 앨프래드는 거대한 바이킹 군대와 홀로 대적해야 하는 위기에 처했다. 이 해 앨프레드는 극적으로 통치를 강화하고 웨식스를 방어하는 한 편 전함을 건조하였다. 앨프레드는 지방 행정 조직을 방어 거점인 "부르흐"를 중심으로 재편하였다. 이 방어 체게는 10세기 문헌인 《부르갈 히다게》(Burghal Hidage, 부르흐 세금 목록)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앨프레드 당시 웨식스에는 서른 셋의 부르흐가 요새화되어 있었다. 부르흐 건설에서 가장 큰 변화를 보인 곳은 웨식스의 수도였던 윈체스터로 성벽 안쪽의 로마시대 도로를 무시하고 새롭게 격자로 구획된 도로를 닦았다.